우리 대신 행복해주세요?

October 19, 2008 9:43 PM | Comments (0)


스타들, '함께 먹고 자면' 예능 뜬다

언젠가부터 주말의 TV는 어김없이 리얼이니 버라이어티라며 연예인들이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어우러져 재밌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난리다. 그 바쁘다는 일상에 지친 우리는 그저 리모콘을 꼬옥 부여잡고 그들의 역할극을 지켜볼 뿐이다. 이러한 TV 프로그램들의 대략적인 흐름을 짚어보자면, 우선 "무한도전"이 장르에 대한 춘추전국시대 재패를 이루어냈고, "1박2일"의 역성혁명이 이어졌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인물구성을 친구들에서 부부들로 바꾸더니 최근 "가족이 필요해"에서는 우리 마음속 사랑방 자리까지 노리고 있는 중이다.

다우가 하루에도 777이 떨어지고, 자살이 유행인 시대를 견디는 현대인들은 점점 더 외로워져만 간다. 그렇다고 해서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 나올법한 정겨운 친구들은 간 데없고 그저 오랜 동창들이 장가간다고 돌잔치라고만 연락이 오고, 결혼을 할 때도 계산기만 두드렸다보니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알콜달콩한 로맨스도 남아있지 않으며, "가족이 필요해"처럼 가족들과 북적북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 오면 그저 방문을 걸어잠그고 PC 게임에 몰두할 뿐이다. 주말이나 휴일은 늘 짧기만 할 뿐, "월화수목금금금"에 시달리는 우리는 파편화되어가는 우리네 인간관계를 사수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저런 억지스런 프로그램들로나마 사람이기 때문에 허전할 수 밖에 없는 마음 한 구석을 달래고 있지는 않을까.

몇 주 전인가 만취한 기운을 빌어 후배 Y에게 지나가듯 물어보았다, "왜 J가 둘째가 생겼다고도, K의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시다고 그네들이 내게는 이야기하지 않을까?" "형은 바쁘잖아"라며 그가 한마디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회사 나부랭이 다닌다고 정말 바쁜 사람이 됐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만, 아직 나는 다행히도 TV에서 친구를, 아내를, 가족들을 찾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닐 것 같아 속상해지는 여느 무기력한 일요일 밤이다.

만성적인 아메르는 일 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오후에만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이 시간대에는 자신의 증상을 잊게 해 줄 일이나 일상적인 잡사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때에야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느니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느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증상을 곧 잊어버렸다.
-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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