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10 Archives

09/15, Wed

IT 전도사라는 중계자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계속해서 가속화되기만 한다. 롤러코스터에 앉은 것처럼 눈 앞에 번쩍번쩍 여러가지가 펼쳐지는데 오직 알 수 있는 것이란 다만 우리가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에 IT라면 침튀기며 장광설을 뿜어내는 전도사들이 은근슬쩍 한 자리 씩 차지한다. 그들은 우선 해외 IT판 - TechChrunch니 Wired니 뭐 많잖아? - 에서 굴러다니는 용어들로 잔뜩 무장한다. LBS? POI? 굳이 찾아보자면 이런 약자놀이가 얼마나 가소로운가. 한국어 화자끼리 POI라고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대체 무엇인가?

애석하게도 IT 시대에 지식이란 더더욱 공유되고 있다. IT 전도사라며 입에 거품 무는 사람들이 흥분하며 늘어놓는 이야기들이란 시간 많고 "영어 좀 하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하고 뻔한 이야기다. 자그마하나 빠꼼이가 되고 싶은 반도국가로서 여전히 한자나 영어를 잘해야 했던 우리의 숙명... 수십세기 그래왔던 것처럼 '눈치 빠르고 큰 나라 말만 잘하는 이들'의 자리가 늘 있게 마련이다. 나아가 그들이 아침에 모 회사의 사내방송에까지 출연하여 싸구려 유행어 같은 IT 외래어들을 자기 말 중에 반을 섞어가며 떠드는 것을 보자니 참으로 거슬린다.

보아하니 아직 현역 짬 같은데 야구 중계를 하지말고, 야구를 해라. 번지르한 학력에 외국 물 좀 먹고 왔으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할 일.

이러한 아침의 심사는 내 휴가가 이제 1주일째 지연되고 있는 것과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09/04, Sat

보고 바인더, 머피의 법칙

나는 숫자 꿰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신입 때부터 보고 들어갈 때에 꼭 두툼한 바인더를 갖고 들어가는 편인데, 바인더에 계속 이것저것 끼워넣다보면 자연스레 제법 두꺼워지게 마련이다.

네임드(83렙위버몹, 임원급)에게 강타를 맞을 때(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올 때), 우선 아둥바둥 머리 속 숫자로 버티거나 상식에 호소해보고(방벽/신의가호 사용), 다행히 필수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할 내용이 아니었다면 자료를 찾아볼 기회(최저/신축 사용)가 주어진다. 그럴 때 바인더가 너무 두껍거나 잡스럽게 뭐가 많으면 보고자 앞에서 10초 내에 자료를 찾지 못해 낭패(힐 공백에 의한 급사)인 경우가 생긴다.

물론, 필수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숫자를 바로 대답하지 못할 경우에도 자료는 뒤적거려야 한다. 그런 썰렁함이 생기는 보고는 대부분 골로 가게 마련이긴 하다. 내가 아마 메인탱커(주보고자 혹은 팀장급)로 들어가기보다는 서브탱커(실무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바인더 뒤적거릴 틈이 생기는 것이다. 맨탱이 가끔 필수 공략 - 이를테면 전사에서 20명이 넘게 아는 숫자/내용 - 을 깜빡하면, 바로 공대 전멸(+ 추가 야근)이다. 이거는 뭐 중재 걸린 것도 아니고 다들 말은 못하고 종이 넘기는 소리만 방에 가득.

그래서 바인더는 출전용으로 늘 정비해두어야 한다. 기본 base를 하나 깔고, 보고 테마별로 운용하면 더 좋겠지? 너무 두꺼워졌다 싶으면 이제는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자료들을 바인더에서 빼는데, 꼭 정리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하다가 그 자료 왜 버렸을까 애석해하며 낭패를 보게 되더라. 이번 case도 과거에 상식적으로 필요해서 당연하게 넣어두었던 내용이었는데 그 data를 갱신을 안하고 그냥 버려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주는 지난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4-4-3의 3연전을 치르는 통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혼나고, C한테 혼나고. :) 그리하여 토요일.

주.
- 탱커(tanker): WoW에서 파티의 리딩/몸빵을 맡은 사람. 네임드의 1순위 분노대상자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흔히 전/보/야/죽.
- 중재: 파티가 전멸할 때 한 사람을 보호막으로 보호하는 기술. 보호막에 걸린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4-4-3 : 3일간 퇴근시간. AM 기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