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편을 봤을때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반지의 제왕” 영화를 볼 때마다 원작 ‘반지의 제왕’에 대한 내 상상력이 갉아먹히고 있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 또 한 가지, 역시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내용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영화 “반지의 제왕”은 원작 독자들을 위한 상업용 심심풀이 재현물, 그것도 독자들의 상상력과는 어긋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작품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우선 “상상력이 갉아먹힌다”는 것을 쉽게 예를 들어 말해보면, 나는 이제 다시 나만의 아라곤을 내 머리속으로 재구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만들어냈었던 아라곤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이제 배우의 모습만 내 기억 속에 남게되었다. 시각화된 것을 인식하는 것과 글로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그러고보면 내가 대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특징지어 내 머리 속에 입력시키는 것이지, 그것을 그대로 머리속에서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들어놓았었던 아라곤이 눈썹 두 개를 모두 가지고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머리속에 갖고 있는 이미지란 그런 것 같다. 완전화된 시각상으로 찍히는 것이 아닌 어떤 느낌, 이미지의 조합으로만 남는 모양이지? 가끔 어떤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려 해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시각과 기억의 작용은 참 미묘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트리비어드’와 ‘앤트족’들의 재현은 나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상상력의 빈곤함을 보여주었다.
“반지의 제왕”은 잊혀졌던 ‘검과 마법, 그리고 요정’의 환타지 세계를 창조, 보급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마 제대로 정독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대개의 고전이 그렇듯이..) “반지의 제왕”은 역사나 세계 현실의 단순한 모방(Mimesis)이나 허구적 재구성이라기보다 ‘중간계’라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 그렇다고 그것이 Mimesis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 역시 영화라는 장르가 짧은 시간과 제한된 문법으로 그 새로운 세계를 설명해내고, 작가가 창조한 피조물들의 구체적 형상화를 해내기엔 큰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므로 원작을 읽기 전엔 질서있게 짜여진 원작의 인물간, 사건간 구성을 그 반(半)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없이 마구 늘어놓으며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란 참 무성의하기까지 하다.
“반지의 제왕” 전체 부분 중 특히 이번 2편 부분을 영화화하기 어려웠을 것은 원작의 이번 부분의 구성 때문이다. 1편에서 반지를 파괴하라는 퀘스트(Quest)를 부여받은 프로도 등의 전형적인 파티(Party)가 출현한다. 1편은 그 파티 구성과정과 파티의 모험이 주된 스토리가 되므로 영화 전개에 큰 문제를 겪지 않았을 것이나, 2편에서는 그 파티가 뿔뿔히 흩어져 쪼개진 파티 구성원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각기 독자적으로 갖게 되어서 그것을 영화 문법으로 풀어가기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쉽게 말해 소설에서는 갠달프 이야기 한참 하다가, 프로도 이야기 한참 하다가, 메리/피핀 얘기 한참 하는 식으로 서술된다.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 비교적 긴 시간들이 따로따로 쓰여지는 것이 소설 서사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영화의 시간은 대개 현실의 시간과 같이 흘러간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영화에서 그렇게 전개를 해나갈 때에 어색함이 많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번 부분은 원작을 영화화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상상력 문제말고도 전개 문제에까지 장르적 차이를 크게 감안해야 하니 말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라곤 역시 헬름계곡에서의 농성전 장면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번 2편은 전쟁의 참상을 나타내는데 주력한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자세한 내용 전달이 어려우니 비주얼 - 장관이다! 직접 보시라, 무시무시한 공성도구들, 빛나는 기병들, 예열을 막 마친 적군의 공포 - 에 비중을 둘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소설과는 다르게 농성전 장면들 속에 성 안에서 숨어있는 여자와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있는 장면들을 비중있게 삽입한 것은 꽤 신선하여 과연 전쟁이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다. 나는 직접 전쟁을 겪지 않고는 전쟁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믿는다.
보고나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이번 영화를 보며 더욱 관심 깊게 본 것은 영상 문법이었다. 내 지극히 초보적인 영상 문법의 지평을 넓혀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영화에 빠져 계속 아무 생각없이 화면만 쫓아갔던 것 같다. 이제야 Shoot과 Cut을 구별하게 되었음에도 - 이런 망신이 –; - 새로운 배움이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영상물만이 가지는 영상문법이 참 매력있음을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며, “반지의 제왕” 같은 비주얼이 강한 작품을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내 영상 문법 공부에 아주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줄인다.
* 主人長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5-1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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