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도 여지 없이 나른하게 술이 안 깨는 토요일 오전, 리모콘을 잡고 채널들을 배회하자니 서재응과 최희섭의 대결이다. 스포츠 중계를 세상에서 제일 지루해하는 나는 두 거한[장수감]의 멋진 풍모를 ‘잠깐’ 지켜보다가 어제 술자리의 기억을 더듬었다. 군대에서 동고동락한 사람과의 자리이다보니 자연스레[어쩌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여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로 유도되었고 당연히 혹자들로부터 견제당했다. 그래, 그렇다면 여기서 ‘군대에서 야구한 이야기’로 복수해야지.

사내 22명 이상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고, 사실 그것 밖에 할 수 없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스포츠’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우리 부대에는 어이없게도 ‘야구 장비’가 있었다.[무려 베이스도 있었다, 중요!] 포수 글러브 따위의 전문성과 진지함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게임을 꾸리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아, 긴 겨울이 지나 꽃피는 봄이 오면, 놀기 좋아하는 고참들로부터 일,이등병들은 야구 집합에’까지’ 시달려야 했다. 일요일날 눈 떠보면 내무반 칠판에 빼곡히 적혀있는 이름들, 야구집합인 것이다! [대개 자기가 주최하는 운동 집합은 늘 즐겁지만, 끌려다니는 운동 집합은 항상 피곤하게 마련이다.]

야구는 TV 중계에 적합한 스포츠인만큼, 담배 피며 즐기기에 적절한 스포츠이다. 공격이 돌아오면, 다들 벤치에 앉아 자기 타석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아무리 담배를 많이 피워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때가 제일 건강했다!] 그러고들 앉았다보면 누구누구 뒷담화로 시작되서, 휴가가서 저지른 이야기들, 도망간 애인 이야기로 이어지며 한 회가 후딱 지나간다. 짬밥이 안 되는 애들은 중견수, 우익수라 그들에게 공수교대는 매우 수고롭다. 수비 중엔 담배도 필 수 없으니 지루한 노릇. 진지하게 야구 게임 - 우리가 플레이하고 있는 - 에 관심있는 사람은 다섯이 넘질 않는다. 말그대로 심심풀이 억지 야구집합!

몇 년이 지나 다시 따사로운 나른한 주말, 이제 자유의 몸인 나는 또 갈 곳이 없네. 나를 억지로 끌어내던 그때의 하얀 칠판과 그 짖궂은 고참들과 내게 삐져있던 후임병들은 어디 갔을까. 어쩔 수 없는 노예근성인지, 갇혔다는 핑계를 걸어놓고 이리저리 도망갈 구석이 참 많았는데… 오늘도 나는 그 루즈한 일요일 오후의 타석에서 하릴없이 피우던 담배 하나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고주현 상병님, 담배 한 대 태우시지 말입니다?’

‘XX, 몇 아웃이냐? 하나 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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