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배경으로 한 18편의 옴니버스 영화이다. 쟁쟁한 감독들께서 파리 시내 20개 구 중 한 곳을 골라 적은 비용으로 5분 정도의 사랑이야기를 찍었단다. 익숙한 배우들의 근황을 간간히 만나는 재미도 있다. 나는 우연찮게 들렀던 파리에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설까 그렇게 보고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다 보고나니, 파리와 사랑에 빠졌다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처럼 파리와는 쉽지 않을지 몰라도 어느 도시와든 정을 붙이고 싶어졌다.

ParisJeTAime

제일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역시 나탈리 포트만과 시각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톰 티크베어의 것이었다. 흐르는 일상을 따라 때로는 함께 흐르다가, 때로는 따로 흐르기도 하는 두 연인의 관계 추이를 세련되게 담은 화면과 경쾌한 음악이 멋지다. 그리고, 유머가 없어 신혼여행 와서 고민하는 루퍼스 스웰이 귀여운 웨스 크레이븐의 것도 - 김저그 씨는 싫었다지만 - 내게는 그냥 유쾌했던 편. 18편 중 튀는 작품은 잘 없어도 무난한 에피소드들이 계속되는 편이다.

C는 설날도 가까운 만큼 이 영화가 ‘러브액추얼리풍’이기를 기대했던 모양, 그러니 파리에서도 주로 지저분한 곳을 많이 돌아다닌 이 영화에 결국 칙칙하다는 평을 내렸다. 나는 또 짐짓 애늙은이 행세를 했다. 어려서 나는 서울의 야경을 지나다 빽빽히 채워진 불이 켜진 저 많은 방들을 보며 무언지 모를 힘을 받곤 했다. 이 영화는 그 불을 채우고 있는 우리들의 그렇고 그런 엊그저께 이야기이다. 밋밋해서 재미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휴모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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