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이런저런 이웃들의 흥미로운 모습들을 보게 된다. 좋게 보이는 풍경도, 눈에 거슬리는 풍경도 모두 우리 삶의 한 가지이다. 우리는 함께 서울을 살아간다.

#1, AM8 공덕역, 한 외국인이 출발하려는 기차를 모자까지 흔들어 문을 다시 열다?

- 자기가 타고 싶다거나 혹은 일행에서 낙오했다고 해서 본인을 위해 바쁜 출근길의 만원기차를 세우기란 아무래도 무리이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그가 왜 떠나려는 기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달라는지 거들어볼까 고민하던 찰나,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이었고 결국 운전기사도 닫힌 문을 열었다. 아, 어느 여자가 입은 옷의 리본이 문에 끼었구나. 문제를 해결한 외국인은 환하게 한 번 웃고 다시 기다리는 줄 뒤로 돌아가 섰다. 여자는 민망한 마음만 바쁜지 고맙다는 말은 커녕 왜 문을 열었냐는 듯 외국인을 원망스레 지켜볼 뿐이었다.

#2. PM11 청구역, 어떤 아줌마가 만취한 아저씨와 함께 내리다?

- 지나친 음주로 힘들어하던 아저씨가 내릴 역을 지나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노선도를 노려보다가 졸다가를 몇 정거장 쯤 반복하고 있었다. 화장을 요란하게 한 옆 자리의 아줌마가 내릴 역을 알려주겠다며 아저씨에게 앉기를 권했다. 둘 사이에 수작이 몇 번 오고간 뒤, 아줌마는 흔쾌히 술 한 잔 더하자며 함께 지하철을 내렸다. 저렇게 만취한 아저씨가 모르는 아줌마와 술을 더 먹어보겠다는 발상도 궁금하고, 몸도 못 가누는 아저씨를 순순히 따라 나서는 아줌마의 의도도 궁금하다. 두 사람 중 한 쪽도 “다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들을 충족하길 빌었다. 둘의 나이는 50대 이상으로 추정됨, 이상.

#3. AM11 동대문운동장역, 장남은 이미 어른스럽다?

- 토요일의 지하철, 상상력을 개발해준다는 천원짜리 팽이를 파는 아주머니가 다음 칸으로 이동하려다 각각 엄마와 아들 둘로 이루어진 두 쌍의 황금어장이 승차하는 것을 보고 다시 광고를 시작했다. 엄마 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 아이들은 이미 반짝거리는 팽이에 마음을 뻇겼다. 두 가족 중의 한 장남이 자신의 동생을 단속한다. 동생의 시선을 얼굴까지 손으로 잡아서 돌리며 “넌 왜 이렇게 갖고 싶은게 많냐” 핀잔을 준다. 형의 거친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팽이 갖고싶다” 읊으며 형을 따뜻하게 포옹한다. 다른 엄마 - 장남으로선 엄마 친구 - 가 결국 하나씩 사주기로 결심한 모양. 아, 동생을 타이르던 엄한 형도 엄마의 눈치를 살짝 본다. 역시 형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첫째에게 이제 애들 아니니까 너와 저런 것은 안 어울린다고 이야기해주고, 친구가 둘째에게만 사주도록 허락한다. 형의 쓸쓸한 점잖은 눈빛을 지켜보던 나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다. 언젠가 든든한 남자가 되어 팽이를 마련할 그 친구를 위해. 그 장남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로 추정,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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