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을 연휴를 맞이하여 단 이틀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400쪽에 조금 못 미치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으나, 복잡하고 난해한 문체나 내용이 아니어서 읽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시원시원한 서사에 비해, 베르베르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였던 작품이 담고 있는 풍부한 정보량은 이전의 호평받은 소설들 - “개미”, “타나토노트” 등 - 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가 최근 영화감독으로의 변신을 모색하는 이유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파피용”은 거대한 우주범선을 타고 새로운 지구를 찾아 천년간의 우주여행을 기약하고 지구를 탈출한 14만4천 명의 개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속 200만 킬로미터로 달려도 천년은 가야할, 수십 대에 걸친 대장정인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천년을 생존해야하는 공간은 지구와 유사하게 꾸민 32km X 0.5km의 원기둥, 우주범선에는 지구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른 나비 - 파피용 - 의 두 날개처럼 태양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두 개의 돛을 달았다. 작품은 파피용 호의 계획 단계부터 우주여행 천년간을 거쳐 마지막 이주까지를 다룬다.
나는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빼어난 것으로 가사를 통한 영계 탐사를 그린 “타나토노트”를 꼽는데, 이번 작품이 우주라는 미지 영역에 대한 탐사인 점을 보아 특히 설레였고, “개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군집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까지 심도있게 다룰 것이라 기대하였다. 애석하게도 이번 작품에서 그런 고민들은 깊이 있게 그려지지 못한다. 우주여행에 예상 외의 문제는 없었는지, 왜 14만4천명이어야 했는지 인위적인 인간공동체 실험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의 부족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군인, 정치가, 종교지도자들을 제외하고 낙천적이며 선량한 사람들만 모여서 살게 해도 왜 세계평화는 오지 않는걸까. 다시 말해, 혁명 후의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어렵다. 이는 내가 여전히 노동운동이나 연대라는 단어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은가, 좋은 사람이 많은가. “좋은”이란 과연 무엇인가?
14만4천의 인위적인 인간공동체 실험에 대한 부분들이 더 깊이 있게 다뤄졌다면 “파피용”은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의 아담, 이브와 뱀의 얕은 패러디는 작가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파피용”은 우주 탐사라는 소재의 신선함에 개성있는 등장인물들과 수려한 삽화 등으로 가을날에 후다닥 읽어제끼기엔 좋은 책 - 표지도 그럴싸해보이는? - 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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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8th, 2009 at 10:3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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