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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상에 대해 학문적이나 과학적으로 접근할 때에 주의해야 할 점으로 관찰자 자신의 특수성으로 인한 왜곡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태리에서 회자되었다는 “천유로 세대”에서 그 이름을 빌리고, “괴짜경제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오늘날의 20대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혼선으로 인해 선정적인 책에 그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양극화 심화 및 고령화에 허덕이는 한국호에 대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그 결과로 나타난 20대의 괴로움을 이전 세대들의 음모처럼 몰아가는 것은 어딘가 불안하다. 나는 똑똑한 시간강사가 처한 한국 교수사회에 대한 고민이 저자로 하여금 이 같은 세대 대결론을 집필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이 책이 가장 잘한 점은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승자독식에 대해 뚜렷하게 지적한 것이다. 우리는 이중적이다. 내 자식만은 서울대에 보내고 싶고, 내 집 값만은 오르길 바란다. 이러니 교육 문제가,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 전사회적인 승자독식 게임의 기원이 언제부터일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잘못된 근대의 충격 탓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다수가 부디 오늘과 같은 로또 한국이 계속되길 기원하는 것이다.
책의 서두부터 10대가 섹스 못하는 이유를 배치한 것처럼 저자는 최근 인터넷 글쓰기 유행을 따라 매우 섹시하게(?) 서술해나간다. 그럼에도 자꾸 잠이 오는 통에 읽다가 몇 번이나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외국유람을 다녀온 것은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외국 십대들과 우리 십대를 비교하는 르포는 무척 진부하다. 십대들이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저자도 뒤에서 힘주어 다룰 “인질경쟁”, 즉 교육 문제 때문임에도 이 점은 서두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교육 문제 때문에 수도권을 떠날 수가 없고, 수도권을 떠날 수가 없으니 집값이 오른다. 집값이 비싸고 학비를 구할 수가 없으니 십대부터 동거, 아니 독립을 못하는 것이다. 한편 동거를 못해서 외국의 20대들에 비해 한국의 그들이 정서적으로 성장이 늦는 미숙아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빠다를 먹고 살아야한다는 강요에 다름 아니다.
야하게 시작한 책은 한참을 우왕좌왕 한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많은 사례들을 늘어놓지만, 프랑스 젊은이들에 대한 저자의 짝사랑을 제외하면 별로 인상적인 대목은 없어 보인다. 마무리에 들어서며 보다 현실적인 진단들을 내놓는다. 바로 10대와 한국의 부모들을 꽁꽁 묶어놓는 망국의 인질경쟁, 비효율적인 교육 문제에 대해 한탄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획일적이고 기이한 교육 구조가 바보들을 양산하여 포스트 포디즘 시대의 세계적인 경쟁에서 한국을 낙오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십분 동감한다. 그러나 저자는 혁명불가, 세계화, 한국경제의 성장정체, 이 세 가지는 숙명으로 제약한 채 20대의 대책을 고민하자 말한다. 그러다보니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는 뭉뚱그레한 결론에 그치고 만다. 투쟁은 그러한 단어들을 읊조리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책 전체에 걸쳐 저자의 논리 전개 방법은 이러하다. 우선 우울한 - 88만원스러운? - 사회 현상들을 잔뜩 늘어놓는다. 그리고 현상들을 종합,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원인과 결과의 혼선적인 배치를 통해 한국사회를 변주해낸다. 바리케이드와 짱돌로 20대가 무장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손윗세대들과의 대결을 위함이 아니다. 30대~40대가 그나마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탐욕이 아니라 지난 한국경제 시스템이 고용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IMF 이후 고용 없는 성장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다. 세계대전이라도 터질 것 같은 전지구적 불황, 한국경제도 다음 단계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기에 고용은 계속 줄어만 간다. 88만원 세대는 젊으니까 엄살이라도 부릴 수 있지,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들은 가족들 몰래 피눈물 흘리고 있다. 진정한 투쟁은 위 세대들과의 쟁탈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권에 대한, 한국사회 전체의 자본 구조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시대의 대학생들은 맨날 놀았는데도 잘 사는데, 왜 요즘 애들은 그렇지 못한가 - 왜 공부 많이 하고 왔는데 정교수 자리는 선배들이 차지하고 안 내놓을까 - 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이 이 책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시대의 대학생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의 부자들만 잘 살고 있는 요즘이지 않을까. 어쨌든, 저자의 작명의식은 퍽 성공적이어서, “88만원 세대”는 유행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세상의 88만원 세대를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이천원의 책 값은 88만원 세대이길 자처하는 저자를 구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세상을 바꿀 교재로 쓰이기에는 비싼 감이 없지 않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을 연휴를 맞이하여 단 이틀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400쪽에 조금 못 미치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으나, 복잡하고 난해한 문체나 내용이 아니어서 읽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시원시원한 서사에 비해, 베르베르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였던 작품이 담고 있는 풍부한 정보량은 이전의 호평받은 소설들 - “개미”, “타나토노트” 등 - 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가 최근 영화감독으로의 변신을 모색하는 이유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파피용”은 거대한 우주범선을 타고 새로운 지구를 찾아 천년간의 우주여행을 기약하고 지구를 탈출한 14만4천 명의 개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속 200만 킬로미터로 달려도 천년은 가야할, 수십 대에 걸친 대장정인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천년을 생존해야하는 공간은 지구와 유사하게 꾸민 32km X 0.5km의 원기둥, 우주범선에는 지구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른 나비 - 파피용 - 의 두 날개처럼 태양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두 개의 돛을 달았다. 작품은 파피용 호의 계획 단계부터 우주여행 천년간을 거쳐 마지막 이주까지를 다룬다.
나는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빼어난 것으로 가사를 통한 영계 탐사를 그린 “타나토노트”를 꼽는데, 이번 작품이 우주라는 미지 영역에 대한 탐사인 점을 보아 특히 설레였고, “개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군집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까지 심도있게 다룰 것이라 기대하였다. 애석하게도 이번 작품에서 그런 고민들은 깊이 있게 그려지지 못한다. 우주여행에 예상 외의 문제는 없었는지, 왜 14만4천명이어야 했는지 인위적인 인간공동체 실험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의 부족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군인, 정치가, 종교지도자들을 제외하고 낙천적이며 선량한 사람들만 모여서 살게 해도 왜 세계평화는 오지 않는걸까. 다시 말해, 혁명 후의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어렵다. 이는 내가 여전히 노동운동이나 연대라는 단어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은가, 좋은 사람이 많은가. “좋은”이란 과연 무엇인가?
14만4천의 인위적인 인간공동체 실험에 대한 부분들이 더 깊이 있게 다뤄졌다면 “파피용”은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의 아담, 이브와 뱀의 얕은 패러디는 작가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파피용”은 우주 탐사라는 소재의 신선함에 개성있는 등장인물들과 수려한 삽화 등으로 가을날에 후다닥 읽어제끼기엔 좋은 책 - 표지도 그럴싸해보이는? - 일 수 있겠다.
“이기는 습관”은 삼성전자의 전임 상무가 월급쟁이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자신이 걸어온 생존비법으로 보인다. 저자는 특히 마케팅전략 업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하는데, 책의 마케팅 관련한 내용들은 그리 신선하거나 독특하지는 못한 편이다. 역시 진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책에서 주목할만한 부분, 즉 ‘습관’으로 엄격한 자기관리 습관과 조직을 바라보는 철학을 들 수 있겠다. 아래에서 그 습관들을 간단히 정리하도록 하겠다.
휴가 중 이틀을 집에서 차분히 보내야 했던 나는 모처럼 소설책이나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책상 위를 떠돌던 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두 권의 책은 휴가에 잘 어울릴 법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또한 우화집이라고 해야 할 만큼 적절한 난이도 - 두 권 모두 두 시간이면 독파가능 - 였기에 이 더위에 더욱 반가웠는지 모른다.
“공중그네”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강박증에 걸린 여러 환자들을 치료하는 에피소드를 엮은 책이며, “베로니카…”는 자살기도한 베로니카가 정신병동에서 자아를 되찾고 일상으로 다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권의 소재가 모두 현대인의 정신건강이다. 오늘의 휴가와 주말의 재충전이 왜 필요한가. 다 먹고 살기 과정에서 심신에 누적되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던가.
“공중그네”에 등장하는 뾰족한 물건을 두려워하게 된 잘나가던 야쿠자, 공중그네를 못 타게 된 일류 곡예사, 1루 송구가 안되는 골든글로브의 3루수 들은 모두 자신만의 강박관념이 축적된 상태이다. 자신들도 모르던 강박관념이 엉뚱한 증세로 표출되어 삶에 많은 지장을 받게 된 것인데, 이를 치료하는 것은 비타민 주사만 놓아대는 이라부의 선문답과 경쾌한 장난이다.
베로니카가 수감된 정신병동 빌레트의 이고르 박사는 현실이란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그 법칙을 어기면 미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의지상실 병에 걸려 열정, 사랑, 욕망이 모두 소실되어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게 되는데, 박사는 그에 대한 해독약으로써 죽음에 대한 자각을 베로니카에 제공하여 그녀로 하여금 진정한 자아를 상기하고 삶으로 복귀하게 만든다.
꽁트처럼 가벼운 형식과 내용들이지만 그래도 한 번 쯤 곰씹어볼 만 한 대목이 있는 편안한 두 권이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오쿠다 히데오, 파울로 코엘료 두 사람의 작품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보다 복잡한 내용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우리 현대인들의 습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현명한 작가들임을 작품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세계평화라는 핑계를 바쁘게 들이대며 자신의 우울하고 지루한 삶을 감추어보지만, 돌아보자니 살면서 타인과 이 우주에 별로 기여했던 바도 잘 없지 않던가.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하며, 무엇이 내 마음을 이곳으로 흐르게 만들었는가. 늘 정답은 멀리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진정한 자아?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 ‘베로니카…’ 에서
덧. 휴가는 이렇게 저렇게 끝이 났고, 만성적인 아메르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말이 날아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토요일이다.
- 공중그네 ; “인생, 길지 않다. 지금 당장 내뱉어야 할 걸 쏟아내지 못하면.” “그래도 원인만 알아내면 그 다음은 간단해. 원인을 없애버리면 되니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만성적인 아메르는 일 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오후에만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이 시간대에는 자신의 증상을 잊게 해 줄 일이나 일상적인 잡사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때에야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느니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느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증상을 곧 잊어버렸다.
우선 책의 두께부터 만만찮은 토플러의 신간, “부의 미래”를 몇 달에 걸쳐 완독하였다. 내 게으름 때문이 크겠으나, “제3의 물결” 개정증보판 같은 “부의 미래”가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트렌드, 미래에 대한 책을 열독하는 것은 한편으로 답답해 보이기 쉬운 노릇인데, 이는 그러한 책이 다 쓰여질 때 쯤이면 그 트렌드가 벌써 역사가 되어버리는 현대의 빠른 변화 속도 탓이라 하겠다. 토플러 박사께서 그러한 필연적인 문제점을 두툼한 분량으로 승부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운데, 이는 트레일러 필름 서사, 인스턴트 메시징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실로 괴로운 노릇이다. 아마 부의 미래에 한 몫 할 이들은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있지 않을 것이다.[아, 그럼 나는?]
원제는 “Revolutionary Wealth”인데, Wealth가 부(富)로 번역된 것은 출판사의 센스가 작용한 덕분이다. 이 책에서의 Wealth는 재화의 생산 및 유통과 이를 둘러싼 총체적 문화현상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미래에 돈 버는 방법으로서 이 책을 일독하기란 1차적으로는 실패다.
그의 사관에 따르면, Wealth는 1차 농경 물결, 2차 산업 물결을 거쳐, 3차 물결을 맞이하였다. 이 3차 물결의 기반(fundamental)이 시간, 공간, 지식이다. 인터넷 기술과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맞이하여 시간과 공간은 매뉴팩처 시대의 그것과 그 관리체계의 붕괴를 겪으며, 지식은 본격적인 생산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부 자체로 귀결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프로슈밍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나, 다만 그 가능성을 점치는 데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논의이기보다는 중언부언과 그리 신선하지 않은 사례들을 나열하는 데 그쳐 토플러 박사의 ‘생각의 속도’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더하여 안타까웠던 것은 미국에 대한 옹호와 애정이 곳곳에 나타나는 점이다. 전지구적 반미의 시시비비 문제를 떠나 책에서 미국을 옹호하는 부분들을 읽을 때는 토플러 박사의 남루한 내음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얼마 전,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읽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으나, 리프킨 박사의 저술이나 사관이 아무래도 비교우위라는 결론이다.
“부의 미래” 이 두꺼운 책에 애석하게도 미래에 돈을 버는 방법은 바로 나와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책들과 공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미래에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래가 궁금하다면, 우선 자신이 과연 현재와 과거는 알고 있는지부터 점검하여야 한다. 그러한 경우에 어쩌면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된다. 두껍거나, 너무 최신일 필요도 없다.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을 권한다. [”부의 미래”, “유러피언 드림” 둘 다 지나치게 두껍다.]
위처럼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이 무거운 책을 끙끙거리며 지하철에서 들고 나르는 것을 보면서 토플러 박사의 실력을 재확인했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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