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미국의 월남전 시대, 흑인 마약사범 댄젤 워싱턴과 그를 좇는 백인 형사 러셀 크로우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제목, “아메리칸 갱스터”에서도 뚜렷이 강조했듯 이태리에서 건너온 살바토레나 루치아노 아저씨들이 아닌 프랭크와 리치 같은, 미국의 미국스러운 조직폭력에 대한 찬가이다.
댄젤 워싱턴이 연기하는 프랭크 루카스는 흑인인 것부터 진보(Progress)라고 평가받는 입지전적 조폭이다. 뉴욕 할렘가를 주름잡았던 전 두목 밑에서 15년간 묵묵히 운전을 하며 자신의 기회를 기다릴만큼 절제의 인물이었으며, 낭비벽으로 튀려고 하지않으며 오직 가족들을 중시하는 모습들에서 예의 청교도들에 대한 상투적인 서술구들과 어울리는 인물이다. 거기에 마약의 중간 유통 구조를 생략하고, 브랜드 가치에도 일찌감치 빠삭했으니 그가 뉴욕을 장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기존 조직들로부터 미미한 견제밖에 받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설명이지 않을까?
러셀 크로우는 “뷰티풀 마인드”의 정신분열 수학자 시절처럼 엉뚱하지만 훌륭한 형사로 나온다. 왜 헐리웃은 아무리 봐도 꺼벙해보이는 그에게 괴짜 천재의 모습을 투영시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작품들에서보다 뚱뚱한 체형으로 출현한 그는 그의 우람한 몸처럼 커버린 미 제국의 자화상이다. 이제 너무 늙어버린 브루스 윌리스나 외계인에 몰두하는 탐 크루즈에게는 그러한 감정이입이 아무래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낮에는 마약범들 좇고 밤에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바람둥이 아저씨라니 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설정인가. - 뭐,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월남전 덕분에 프랭크의 눈부신 - 정경유착 아닌 군폭유착? - 마약 유통 구조가 나온다. 전쟁도 없애지 못하는 것이 마약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거대한 해악사업일 수록 사회 지배구조의 암묵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공익광고처럼 나오는 보통 시민들이 마약으로 인해 파멸하는 모습을 보라, 댄젤 워싱턴의 말쑥한 모습이야 말로 그러한 사업에 종사하면서, 혹은 행해지도록 눈감아 주면서 자기는 일요일에 교회 다니며 헌금 몇 푼하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어디 극단적인 저 마약 뿐이겠는가.

영화는 프랭크 측이 무난했던 그의 마약 성공기처럼 다시 일방적이고 차분한 패배를 맞으며 끝이 난다. 그 패배엔 다시 청교도적 교훈이 있다. 돈이 많이 드는 여자를 만나지 마라, 가족간에 꼭 화목해라. 후일담으로 프랭크와 리치가 공조하여 부패한 마약단속 경찰들을 일망타진한다는 이야기가 제시되는데 이는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노익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 솜씨는 탁월하며, 두 주연과 조연들의 연기도 충분하다.
이 영화는 어딘가 닮은 두 남자가 적으로 만났던 “히트”와 조폭의 고전 “대부” 시리즈의 중간 즈음에 감독의 내공으로 인해 세련된 그림으로 서 있다. 영화 전반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프랭크와 리치의 후일담이 더욱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메리칸 조폭과 아메리칸 형사는 이러하다 식으로 제시되는 미국식의 강한 자기긍정에 대한 부담스러움이지 않았을까.







wiredkj@gmail.com